한 트랜스젠더의 근황
무척 오랜만에 블로그를 켰다. 시간의 공백이 있었던 만큼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주 일상적인 일들이지만, 내게는 위협적인 일들이었다. 옳은 표현은 아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해야할까?
주변 곳곳에서 나는 얼마든지 아웃팅 당할 위험을 달고 산다. 트랜스젠더가 그렇지 뭐. (라고 자조적으로 생각할 때도 많다.) 정말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마저도 나를 검열하게 된다. 법적 여성으로 살아왔던 시절을 절대 '밝히고 싶지 않아' 이런저런 변명만 늘어난다. 엄밀히 구분짓건대 '들키고 싶지 않다'와 '밝히고 싶지 않다'는 다르다. 어쨌든 내가 살아온 시간이니 어쩔 도리가 있을까. 하여간 서론이 길었다.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일상을 공유하려 한다.
은행업무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새로운 통장을 개설하기 위함이었는데, 남성으로 호적정정하기 이전에 사용했던 은행이라 떨렸다. 해지하고 거래를 하지 않은지 엄청 오래되기도 했고 주민번호가 변경되었기에 아웃팅 당할 위험은 0에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무섭고 두려웠다. (참고로 성별정정 이후에 통신사, 은행, 관공서 등 다 셀프로 정보변경 신청해야 한다. 나중에 이에 대한 정보글을 올리겠음!) 신분증을 제시하고 통장 개설이력을 확인하는데 엄청 떨렸다. 다행히 창구직원분은 '(저희 은행은) 첫 거래시네요.'라고 하셨고 나는 그냥 그렇다고 했다. 구구절절 제가 옛날에 통장을 만들긴 했었는데요 해지했고, 지금은 성별이 변경되서... 라고 설명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역시 기분이 썩 좋진 않다. 다행히다, 싶은 안도감과 동시에 엿같았다. 내가 왜 숨기고 살아야하지. 힝입니다.
다른 일은 취직 자리를 알아보면서 일어났다. 다른 기관을 통해 구직신청을 해야 해서 개인정보를 제출했는데, 하필이면 이전 기록이 남아있었다. 그러니까 예전에 쓰던 주민번호 뒷자리(성별정보)까지 남아있을 가능성이 컸다. 일단 이러한 이력이 남아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떨렸다. 되도록이면 현재 주민번호로만 활동하고 싶은데! 망했다. 그냥 동명이인이라고 취급하기엔 생일도 똑같고 주소도 같을테니...(끔찍하다) 현재는 어영부영 넘어가서 묻힌 일이 됐다.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물어보지 않는 이상 나도 대답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냥 이대로 넘어갔으면 좋겠다, 는건 내 소망. 커밍아웃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 외엔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경험을 쌓고 있다. 원래는 집 밖으로 잘 안나가는 인간이었지만 꾸역꾸역 사람을 만난다. 사회에 섞였을 때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궁금하기도 하고 어느 쪽 성별로 패싱될까 싶기도 하고. 열이면 열 남성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내 느낌으로는) 시스젠더 남성이 나를 그리 편하게 여기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 왜 남성집단 특유의 동질감? 동질성? 동성이기에 허용되는 스페이스 같은거? 아무튼 그게 나한테까지는 열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서운하다거나 슬프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묘하다. 애초에 섞일 마음도 없고 섞이고 싶지도 않지만, 적어도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어도 어느 정돈 편입되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다.
애초에 이런 고민이 무의미해지는 사회가 도래하면 참 좋겠지만. 아, 요즘 교육 트렌드(...)가 성역할에서 탈피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던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난감하다. 다양성이 수용되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