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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M 트랜스젠더/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내가 FTM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기까지

트랜스젠더 프라이드 플래그

 

나는 FTM 트랜스젠더로 살아가고 있다. 첫 문장을 어떻게 해야할지 참 고민이 많았는데 일단 이렇게 시작해야겠다. 그냥, 이런 사람이 살고 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을 뿐이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에 기반하여 쓰는 글이고, 더 큰 바람이 있다면 누군가에겐 나의 기록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당연하게 그럴 수 있다는 것... 뭐 등등등. 내가 정체화하게 된 과정-이라고 쓰고 내 일대기-를 쓰려고 한다.

 

내 생애 첫 트랜스젠더

앞에 왜 저런 이야기를 했느냐면, 내가 퀴어라는 것, 특히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워낙에 낯선(?) 존재로 여겨지다보니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하리수 씨가 있었지만, 무지했던 나는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MTF 밖에 몰랐다. 그나마도 편견과 선입견과 악의적으로 편집된 모습 밖에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아무튼 나도 그런 편견덩어리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미워한다거나 싫어한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도 없었고 정확하게는 '무관심'이었던 것 같다. 그냥 저 사람은 그런가보지. 요런 정도.

내가 아주 어린 학생이었을 때 일이라 정확하게 하리수 씨가 어떤 행보를 보였고, 어떻게 커밍아웃을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기억나는 일은 아이들 사이에서 그분을 '비속어'로 사용했던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냥 욕이었다.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참담하지. 언젠가 내가 사는 곳에 하리수 씨가 행사를 하러 왔다더란 소문이 있었다. 학원을 가다가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구경가자!" 라면서 행사장으로 가기도 했다. 왜일까. 그냥 그 광경이 계속 내 머릿속에 확연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건. 그들 입에서 오르내리던 혐오말들도.

 

정체성과 나를 표현하는 수단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가진 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막연하게 아주아주아주 어린 시절이라고만 생각한다. 일종의 트젠 레파토리(?)라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이렇게 밖에 설명을 못하겠다.. 나는 '여'라고 명명지어지는 것들이 싫었다. 나에게 주어진 성별이 불편했다. 과장되게 말하자면 믿기지 않았다(!) 탯줄 끊을 때부터 웃겼는데, 어른들은 당연히 나를 '남자아이'라고 여겼지만 까보니 있을 게 없더란다(...) 이제와서는 있으나 없으나 그게 무슨 상관이냐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성기란 매우 중요한 것이니까 이 부분도 나중에 이야기해보겠다.

어쨌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내 주변환경은 둘째치고 그냥 나는 싫었다. 여자아이인 것도 싫고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해주는 것들이 싫었다. 대체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를 묘한 불쾌함을 느꼈었고, 남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주변에는 절대 말 하지 않았다. 어린 애여도 눈치라는게 있었던 모양이다. 좀 더 나이가 들고 나서, 혼자서도 컴퓨터를 하고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된 무렵에... 온라인 채팅에 눈을 떴었다. 엄청 중독이었다. 지금이야 SNS가 워낙 활발하니까 인터넷으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때는 부정적인 시선들이 많았다. 아무튼 나는 얼굴도 이름도 성별도 사는 곳도 나이도 모르는 그들과 대화하는게 편했다.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 온라인에서 나는 '남성'이었고 전화통화를 하게 되어도 당연하게 '남자애'였다. (순전히 목소리 덕분이었는데, 낮은 편이었다)

완전 초창기에만 사귄 채팅 친구들에게만 커밍 아닌 커밍을 했었는데, "나는 사실 남자로 대해주는게 더 편해.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라고 하니 그렇구나! 라고 넘어가는 사람, 정신적으로 그렇다는 거야? ㅇ0ㅇ 라던 사람, 네가 진짜 남자였다면 너랑 사귀었을 텐데 라던 사람 등등 다양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 어이없어서 헛웃음만 나온다. 진짜 남자고 정신적 성별이고 뭐람.... 지금은 다 반박해줄 수 있는데 그땐 다 수긍했었다. 왜 그랬지. 후회됨.

중학생이 되고는 두발제한이 있어서 처음으로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오.... 매우 싫었다. 나름 13년 인생(?)동안 머리를 길러왔는데 갑자기 이렇게 댕강 잘라야한다니... 최악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바가지머리가 됐는데 나중에 댄디컷을 만나고 난 후로 환골탈태했다.... 그 이후로는 소위 말하는 '숏컷'이 되어서 내내 짧머를 유지했다. 스스로를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정체화라는 거 자체를 몰랐음)과는 별개로 그냥 내가 그렇게 다니는게 좋았다. 옷도 내 정체성과 별개로 그냥 남성복에 가깝게 입는 것이 좋았고.

 

레즈인가? 게이인가? 바이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이건 성 정체성하고는 별개로 성 지향성 문제인데, 당시 트랜스젠더보다는 동성애가 더 많이 가시화가 되어있어서 자연스럽게 성 지향성을 고민하게 됐었다. 나는 남자인 친구들에게도 호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여자인 친구들에게 확실히 더 강한 끌림을 느꼈었다. 왜? 몰라 나도... 그냥 좋은 걸 어떡해... 하지만 이때의 나는 혐오 편견덩어리여서 겉으로는 어느 쪽에도 끌림을 느끼지 않고 연애엔 관심없는 척 했는데 (당시엔 누가 누구 좋아한대 하면 놀림받기 일쑤라 그런 애들이 많았음...) 온라인 세계에 접속하면 달라졌다. 여자를 좋아하긴 하는데 남자도 좋아하기는 하는 것 같다고.

공수 테스트, 동성애자 테스트 뭐 이런게 유행했던 시절이라... 그걸 통해서 처음 게이, 레즈, 바이에 대해 알게 되기도 했다. 좀 어느 쪽도 다 들어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있었다. 나 스스로를 게이니 레즈니 정체화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이건 성별이 너무도 뚜렷하게 두드러지기 때문이었다... 고 생각한다. 그땐 정확한 이유를 몰랐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영부영(....) 바이라고 소개했다. 그것도 여자를ㅋㅋㅋㅋㅋ더 좋아하는 바이ㅋㅋㅋㅋㅋ............. (혐오자였다 정말) 과거의 행적들을 파보면 할 말이 너무 많다... 반성할 거리도 너무나 많다.

여하튼 또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는 결국 여자를 좋아하는구만 인정하게 됐을 때는 이미 너무 확고하게 내가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법적 성별은 여성이었지만 스스로를 남성으로 정체화했었다. 꾸준히 이야기하지만 정체화라는 단어고 트랜스젠더고 다 몰랐다. 그냥 내가 남성으로서 정체화한 것이 편했다. 이미 사람들은 내 외모와 목소리에 남성이라고 믿었고.. 온라인으로 맺어진 인연들과 오프하면서도 당연하게 남성으로 함께했다. (대체 무슨 깡이었는지?)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도 많이 있었는데 나중에 풀어봐야겠다.

 

찾았다 내 정체성

초록창 지식인이 매우 활발했던 시절, 당연히 나도 지식인에 도움을 받았다. 가뭄에 콩나듯이 아주 작은 단서를 구할 수 있었다. 여자인데 남자가 되고 싶어요, 남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같은 질문에 달린 답변에서 말이다. 하나같이 수술하시면 됩니다, 청소년기에 잠깐 스쳐지나가는 착각이에요, 남자는 꼬추 떼면 됨 같은 발언만 넘쳐날 때... FTM 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됐다. 바로 더 찾아봤다. 성전환 수술에 대한 대략적인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옳거니! 이거다. 정독해보았으나 당연히... 상세한 방법이라든지 병원 정보라든지 하는 건 알 수 없었다. 그냥 무지막지하게 복잡하고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 밖에는. 그래도 기뻤다. 내 정체성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동안에는 나 혼자만 이런 사람일거라는 불안함이 있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별난 존재. 누구한테도 밝히지 못하는 이야기. 아무리 염원해도 갖지 못할 시스남성과 같은 외형,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것이 디스포리아였다는 것도 한참 후에 알게 된 것이었다) 등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았거늘. 이제야 내 집을 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여전히 나는 무지했다. 아는 곳이 레즈 커뮤니티 밖에 없어서 기웃기웃거리다가.... 암만 봐도 티부랑 나는 닮아있지만 내 정체성은 아니었다. 거기서도 답을 찾지 못하고(당연히 못 찾지) 우연한 기회로 트위터에 안착하게 되고, 정말 또 우연이 겹쳐 퀴어 트친소 계정을 알게 됐다.

기쁜 마음으로 FTM을 찾아 다녔지만, 별로 없었다. 아니 눈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역시나 나 혼자 뿐인가 우울에 빠져있을 때 단비처럼 MTF 지인이 생겼다. 그 지인을 필두로 FTM 친구들이 하나씩 생겨났다. 트젠의 친구는 트젠이 아니겠는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도움이 될만한 트젠 커뮤니티 정보도 얻게 되고 수술에 대한 정보도 주워듣게 되면서 뭔가 신세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손가락 한마디도 안되는 극극극소수 정보들을 모아모아 가면서 기뻐했던 내가 생각난다. 그러면서 동시에 트젠의 현실을 알게 되니 현타도 심했다. 왜 다들 그렇게 숨어살 수 밖에 없는지 온몸으로 경험해야 했으니까.

트젠 친구들이 생겨서 좋았던 점은 내 세상이 말도 안되게 넓어졌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나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던가. 물론 함께 땅굴 파고 들어가서 심하게 우울할 때도 많았지만, FTM 게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성 정체성과 지향성에 차이도 알게 되고 논바이너리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여러모로 퀴어 지식이 쌓여갔다. (이것도 몇 년 걸린 일이었지만)

 

 

현재 이야기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언급하자면, 정정해서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집에도 커밍아웃 했고, 친인척 어른들도 알고 계시는데 사촌들한테만 커밍을 안했다. 꼴이 웃기지만 아무튼 그렇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애진작 커밍했고, 지금도 굳이 숨기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가 안전하다는 예감이 들때만 한다. 굳이 위험부담을 안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누군가 내 정체성을 알게 되도 어쩔 것인가. 나는 이런 사람이고, 당신의 찬반 논란거리도 아니며, 구경거리도 아닌 것을... 몰라서 물어보는거라면 다 대답해줄 수 있으니 차라리 솔직하게 질문해주길 바랄 뿐이다.